◆◆ 감 독 :  크리스 멘지스 Chris Menges

1940년 영국에서 태어난 크리스 멘지스는 다큐멘터리 촬영감독과 편집일로 영화계에 입문한 감독.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에는 위험한 지역을 꺼리지 않고 찾아다닌 까닭에 주위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. 켄 로치 감독의 <케스 Kes>로 촬영에 발을 들여놓은 멘지스는 두려움 없는 과감한 성격을 주의 깊게 본 린제이 앤더슨의 눈에 들어 1970년 <이프 If...>로 극영화 촬영을 시작, 71년 <블랙 뷰티 Black Beauty>부터 촬영 감독으로 활동한다.

이후 20년 동안 <광란의 제국 The Empire Strikes Back> 등 크고 작은 영화에서 화면을 빛냈던 멘지스는 1984년작 <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>와 1986년작 <미션 The Mission>으로 연달아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. 미국 최고의 촬영 감독으로 입지를 다진 것도 이때부터다.

촬영일을 하면서 감독이 되기를 꿈꿨던 멘지스는 1988년 남아프리카 인종차별의 문제를 흑인의 시각에서 그린 <갈라진 세계 A World Apart>로 감독 데뷔한다. <킬링필드>와 <미션>에서 다루었던 사회적인 주제 의식과 남아프리카 사회상을 접목시킨 이 영화는 활동가인 10대 여자의 시각으로 아프리카의 참상을 다뤘다. 선명한 주제의식으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. 다큐멘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려한 촬영을 보여준 <갈라진 세계>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의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감독으로서 멘지스의 입지를 마련해준 성공작이 된다.

4년 뒤 그는 역시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두 번째 작품을 내놓는다. 베트남전의 상처로 밤마다 스트립쇼를 하는 어머니와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 딸을 그린 <크리스크로스 CrissCross>는 6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뒷면을 섬세하게 날카롭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.

그 뒤 멘지스가 선보인 작품은 대부분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담아 사회파 감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. 이런 그의 성향은 켄 로치와 린제이 앤더슨 등 좌파적 성향이 짙은 감독과 작업했던 까닭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멘지스 자신의 고민이 영화로 투영됐기 때문이다.

1994년 병중인 아버지를 모시는 미혼남이 아이를 입양하면서 겪게되는 고뇌와 우정을 그린 <세컨드 베스트 Second Best>를 선보인 멘지스는 감독일을 잠시 접고 닐 조단의 <마이클 콜린스 Michael Collins>를 촬영, 아카데미에 촬영상을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.

1999년 다니엘 오테이유 Daniel Auteuil와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아동 매춘을 둘러싼 범죄를 파헤치는 영화 <로스트 선 The Lost Son>을 선보인다. 문제의식은 강하지만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통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멘지스는 숀 펜이 연출하는 <담보물 The Pledge>과 페니 마샬의 코미디 <소년을 태우고 달리는 차 Riding in Cars with Boys>의 촬영을 맡는 등 본연의 업무로 돌아갔다. 감독으로서도 좋은 작품을 연출한 멘지스지만 27편의 촬영편수가 말해주듯 촬영감독으로 더 많이 회자될 영화인이 바로 그이다.